최종 편집일 : 2024.03.29 (금)
글밭 산책 --------- 작지만 큰 소망 이 용 섭 동해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둥근 해가 올랐습니다 흑호黑虎의 해, 임인년壬寅年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눈부신 새날의 태양을 안고 작은 소망들을 빌어 봅니다 공정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세상 어둠의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절망이 아닌 희망이, 불신이 아닌 믿음이 분열과 다툼이 아닌 일치와 평화가 있는 지위의 높고 낮음 없이 채움보다 비움이 있는 세상 누구나 뜻을 가지고 땀 흘려 노력한 만큼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 새날같이 ...
[글밭 산책] --------- 고향 집을 찾았다가 김 원 호 몇 년 만에 찾은 비워둔 고향집 텃밭은 도둑고양이들 놀이터가 되어 있고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폐비닐 몇 조각이 나풀대며 나를 맞아 준다. 허물어진 기둥 우편함엔 빛바랜 고지서와 광고지가 부재중인 수취인을 기다리고 있고 닫혀 있는 대문 틈으로 지난여름 무성했던 풀잎더미 어지러운 마당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무심한 세월에 묻혀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 되어버린 나를 사정을 알 리 없는 이웃집 개가 나들이 가다말고 멈춰 서서 수상한 눈길...
[글밭 산책] ------------- 익숙한 불안 이 화 련 불안은 내게 평안보다 가깝다. 소심하고 과민하여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편이라 평안하기보다 불안하기가 쉽다. 별일 아닌데도 잔잔하던 마음에 뽀글뽀글 거품 일고 살랑살랑 물결 돋는다. 새끼악어 같은 불안이 일상의 수면을 솟구쳐 고개를 내민다. 그 새끼악어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나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특히 손을 쉬지 않는다. 무엇이든 만지고 고르고 다듬으며 숨을 고른다. 밭일이 제격이다. 씨앗을 심고 풀을...
글밭 산책 집필진이 바뀝니다 권영호 (아동문학가 ․ 수필가) ⦁ 경북 의성에서 태어남 ⦁ 기독교아동문학상 동화 당선 (1980) 계간에세이문학(봄호) 수필 천료(2009) ⦁ 제17회 문학세계문학상 동화부문 대상 수상, 제6회 경북작가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새바람아동문학회, 대구에세이문학회원, (현)의성문인협회 회장 (현) 경북문인협회아동문학분과 위원장, ⦁ 창작동화 '날아간 못난이' '봄을 당기는 아이' '바람개비' 김원호 (시인) ⦁ 경북 선산 출생 ⦁ 1984...
[글밭 산책] -------------- 지붕과 소나기 구 은 주 한때 나는 세상도 두렵지 않은 소나기였다 내 손길 지나지 않은 바다 닿지 않은 강이 어디 있었으랴 적막이 드리워진 그 땅끝 어디라도 구름을 몰고 다녔지 준령들은 얼마나 높이 내 앞을 가로막았을 것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람은 나를 몰아내려 몰려들었을 것이니 꿈속이 아니고서야 사람아 어찌 네 가슴을 적시겠더냐 햇살에 타들어 가는 슬픈 사막 마침내 다다른 고통 속에서 나는 네 지붕을 걷어내고 천 년을...
[글밭 산책] ------- 돌매화 박 월 수 동그란 양철통은 요람처럼 아늑했다. 어릴 때 그 속에 들어가 노는 걸 좋아했다. 가마니에 벼를 옮겨 담을 때 사용하던 양철통은 농사철에는 꽤 쓰임새가 많았다. 애면글면 기다리다가 말 통의 용도가 끝나기 무섭게 동그랗게 몸을 말아 통 속에 들어가곤 했다. 그 속에 폭 싸여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틈만 나면 들어가 두 팔과 얼굴만 내놓은 채 과자를 먹었고 소꿉을 살았다. 양철통 속이 점점 비좁아지던 어느 날 몹시 ...
[시조] 비는 그쳤는데 조 평 진 지난세월 사려놓고 가슴 앓던 외로움이 때 늦게 옹이 맺혀 벙글 지 못한 것은 덧없이 흘러간 구름 그리웠나 봅니다. 가슴에 묻어놓은 그날 그때 추억 한 편 옥합에 담아 놓고 정성 다해 모셨건만 노을은 산마루에서 홀로 타나 봅니다. -------------------------------------------------------------- 작가의 말 아련하게 안겨오는 지나온 발자취들 새삼스럽게 보듬어 보니 모두가 아쉽고 ...
[글밭 산책] ------------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성 정 애 한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감독은 그 영화에 출연한 여주인공과 바람이 나서 본 부인에게 일방적인 이혼을 요구하였고, 가정을 지키려는 부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새 연인과 딴 살림을 차려 이 땅의 조강지처들로부터 많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아내의 오랜 내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아빠와 딸 수준의 어린 연인과의 사랑을 합리화하는 듯한 영화 제목으...
[글밭 산책] ----------------- 이승바다1 김 교 희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나는 던져졌지만 바다는 언제나 별빛을 안고 잠들어갔다 맨몸으로도 가 닿고 싶은 뭍 산호섬 같은 그대 은빛 비늘 반짝이며 파닥거리면 하늘 그물 펼쳐지려나 길이를 알 수 없는 바람 속으로 파도는 하얀 거품을 물고 오늘도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 작가의 말 ...
[글밭 산책] 폐업 신고 ----------------------------------- 권 영 호 【1】 언제인가 아동 문학지에 발표했던 필자의 창작 동화, 「숲속 노래방」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해마다 초여름이면 구봉산 첫 봉우리 등산로 들머리에 서 있는 단풍나무가 노래방을 개업한다. 때를 만난 매미들이 하나둘 노래방을 찾아왔다. 단풍 나무 옆에 서 있는 굴참나무랑 아카시아도 서둘러 노래방을 개업했다. “찌르르 여름이다여름이다 찌지르르….” 목청 높은 말매미 서너 마리가 떼창을 해대면 귀가 아파 견딜 수가...
[글밭 산책] -------------- 짐 진다는 것은 김 경 숙 누구를 위해 등이 휘도록 짐 진다는 것은,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쏟아져 와도 나의 한자리를 짐 진다는 것은 굽어지는 만큼 가슴으로 채워지고 휘어지는 만큼 마음으로 따스해오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가슴으로 휜 등을 받아주는 것 ------------------------------------------- 작가의 말 짐을 진다는 것, 사랑이 아닐까요?...
[글밭 산책]------------ 나무는 바보다 이 일 배 오랫동안 강대나무로 서 있던 큰 나무 하나가 쓰러져 누웠다. 언제 강대나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십여 년 전 내가 이 나무를 만날 때부터 강대나무였다. 이리 큰 나무로 살아오자면 내가 살아온 햇수보다 더 많은 나이테를 둘렀을 것이다. 강대나무가 되기 전에는 여느 나무들처럼 왕성한 가지에 푸른 잎이며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했을 것이다. 새들이 날아오면 안아주기도 하고, 짐승이 몸을 기대면 품어주기도 했을 것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