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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467번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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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467번지의 추억

권영호

[글밭 산책] ----------- 467번지의 추억 

 

권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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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이 되도록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우둔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이미 청년기에 객지로 나가 생활 기반을 단단히 잡았다며 거드름을 피우는 친구들을 볼 때면 더욱 그랬다. 솔잎을 먹지 않고도 송충이는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나는 이미 늙어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고향을 떠나지 않았음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 누구에게나 추억의 보고인 고향에서 살고 있음이 행복이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유 없이 마음이 울적할 때면 내가 찾아갔던 곳이 있다. 걸어서도 쉽게 갈 수 있는 태어나서 유년을 지냈던 옛날 내 집, 그리고 골목길이 이다. 내가 그 집을 떠나 온 것이 오십 년도 훨씬 지났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등기부에 이름을 올렸던 집 주인들의 살림이 아마도 넉넉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웬만하면 낡은 집을 확 뜯어버리고 새집을 지을 만도 했었는데 말이다. 개축, 재개축만 했을 뿐이어서 집 본채는 내 어렸을 때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게 어쩜 내게는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른다. 집 주위의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오래전이었다. 집 옆에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넓은 공터에 읍사무소가 들어섰다. 그 바람에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었던 신작로가 4차선 넓은 도로로 바뀌었다. 읍내 중심지에 있던 시외버스 터미널이 길 건너편으로 옮겨오면서 마트, 병·의원, 음식점 등이 다투어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날, 증명서 한 장을 발급받기 위해 읍사무소에 들렸다. 건물 동쪽으로 새로 만들어 놓은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언제부턴가 주차 문제로 큰 불편을 겪어왔던 민원인들을 위한 관청의 배려에 감사했다. 차에서 내렸다. 깜짝 놀랐다. 읍사무소 나지막한 담장 너머 자리했던 나의 옛집이 오간 데 없었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안간힘으로 버텨 서 있는 이 주차장은 의성군 의성읍 후죽동 467번지! 바로 나의 옛 집터가 분명했다. 

 

  이곳에는 열댓 평 남짓했던 본채와 방 하나에 헛간이 달린 아래채가 있었다. 두툼하고 넓적한 돌을 몇 겹으로 깔아 놓은 장독대, 그 옆에는 누나랑 함께 호미로 일구어 만든 꽃밭이 있었다. 언제인가 우리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흙담을 쌓고 나무 대문까지 달아 주셨던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다섯 남매의 든든한 울타리였다. 해지는 줄 모르고 아이들과 놀다가 흙투성이가 된 채로 달려오는 아들을 빙긋 웃음으로 안아주던 어머니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추억일 테지만 여태껏 나는 467번지의 추억을 행복했던 유년의 그림자로 데리고 다녔다.

 

  주차장이 만들어질 거라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한동안 비어 있었을 그 집에 들어가 보기라도 했을 텐데 하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철거 작업을 하던 날, 우직한 굴착기는 삽시간에 그 집을 허물어뜨렸을 것이다. 서둘러 폐자재를 걷어치우고 펄펄 끓는 아스콘으로 두껍게 덮은 공사판 책임자는 아주 말끔하게 잘 정리되었다며 낄낄낄 웃었을 것이다. 내 유년의 고왔던 추억들을 무참하게 묻어 버렸으니 말이다. 울컥거리는 울분이 목구멍에 걸렸다. 싸했다. 따갑고 아팠다. 소중했던 그 무언가를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는 허망함에 그만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쉼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진보 행위에 익숙해 있다. 새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던 헌 건물은 가차 없이 철거되어야 했다. 사람들의 손에 맥없이 허물어지는 헌것, 그것도 처음엔 쓸모가 있었고 존귀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아니다.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 의해서 467번지의 집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애써 고향에서 살고 있음을 행복이라며 위로하며 살았는데…. 내게는 그 누구를 탓할 권리가 없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저 혼자 아쉬워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그저 편리하게 활용하고 있는 주차장, 467번지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오늘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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