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편집일 : 202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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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상선약수(上善若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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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상선약수(上善若水) 유감

성 정 애

[수필] 상선약수(上善若水) 유감 


성 정 애


  어릴 적 내게 물은 공포였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장마가 지면 학교 옆의 늪은 물 높이를 키워 운동장 끝에 있는 미루나무 밑동을 잘라 먹고, 운동장 안까지 슬금슬금 쳐들어오면 하굣길까지 삼켜버리곤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길을 버리고 논두렁을 지나 수풀 우거진 산길을 돌아 집으로 와야만 했다. 

  고향 동네 입구에는 제법 큰 저수지가 있었다. 여름 방학이면 초동들의 물놀이터였고 겨울이면 팽이치기와 스케이트장이 되어 온 동네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그런 즐거운 놀이터에서 사달이 났다. 오랜 가뭄으로 저수지의 물이 마르자, 저수지 안에 웅덩이를 팠고, 이웃에 살던 동생이 그 웅덩이에 빠져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제같이 보던 아이의 소멸과 정신 줄을 놓고 헤매던 친척 아지매의 넋 나간 모습은 어린 내게 크나큰 충격이었고, 그 뒤로 나는 그 무서운 저수지와 이별을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옛 성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알게 된, 노자의 『도덕경』 8장 첫머리에 나오는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아서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아니하고…). 요즘은 이런 편액을 잘 볼 수 없지만, 한때, 잘 지어놓은 한옥이나, 고상한 주인의 그럴싸한 방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편액의 글귀 <上善若水>. 볼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운동으로 배운 수영 덕분에 웬만한 물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다. 하지만 내가 아는 동생이 겨우 일곱 살에 물에 빠져 죽은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이 물이라니.

  필부(匹婦)가 감히 노자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불경을 범한다는 야단을 맞을지라도 나는 물이 지닌 일곱 가지 덕(水有七德)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첫 번째 겸손의 미덕 –물은 욕심이 없어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에 대한 나의 의심은 산꼭대기에 있는 암자의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보면서 일어났다. 미진한 나의 의심은 미국의 국립공원 옐로스톤에서 보았던 수십 미터를 치솟아 오르던 간헐천의 물기둥을 보면서 첫 번째 미덕은 깨졌다. 

  나머지 여섯 가지- 지혜, 포용력, 융통성, 인내, 용기. 대의- 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한 거대한 해일은 물이 가진 일곱 가지 덕을 한꺼번에 박살 내고 말았다.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그 날의 해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간의 삶을 일순간에 집어삼켰다. 해일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가 2만이 넘는다는 보도는,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를 방불케 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선현의 가르침과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나의 오랜 갈등은 붓다의 가르침으로 해소되었다. 空. 無我. 無常. 中道. 緣起, 不二…. 내가 알고 있는 수준으로 말을 하자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 원소를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는 항구적으로 변함없는 ‘실체’가 없다. 다시 말해 물의 실체는 없다. 선도 악도 아니다. 하천이나 계곡을 흐르는 유순한 물은 농경지의 농작물을 키우고,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급류는 나쁜가? 급류를 이용한 수력발전소는 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일본의 해일은 수마(水魔)였다. 이처럼 물의 실체가 없는 까닭에 인연(因緣)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듯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차별 상은 서로 갈마들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선악(善惡), 생사(生死), 상하(上下), 고저(高低), 대소(大小), 장단(長短), 우열(優劣), 극락과 지옥, 행복과 불행,…등등의 온갖 분별은 상대가 있으므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不二이며, 一如다.

  49일째 이어진 장마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오십여 명에 이르고, 가축 수십만 마리가 물에 빠져 죽었다. 물로 인한 산사태의 폭거는 사람이 살던 집을 흔적도 없이 덮어버리고, 도심 한복판의 지하차도를 지나가다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강으로 변한 마을에서 우사를 탈출한 소 떼는 인근 산의 암자로 피신하고, 일부는 축사와 주택의 지붕에 올랐는데 물이 빠지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지붕이 내려앉는 바람에 소들이 방안에 들어앉아 있는 웃지 못할 장면을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하지만 머잖아 우리는 이 물난리는 극복하고 이번 수마의 교훈으로 제방을 높이고 위험지구를 정비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마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노자님의 일곱 가지 물의 덕이 아니라 백 가지 덕을 칭송한들 물의 고마움을 대신할까.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장마에 아직 수해 복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내일부터 태풍 ‘장미’가 한반도를 지날 것이라는 보도에 기가 막혀 노자님의 말씀에 딴지를 걸어보았다.


성 정 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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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창녕에서 태어남, 『문예사조』등단

○ 한국문협, 포항문협,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형산수필문학회,  현, 경북문인협회부회장 

○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 전공, 동 대학원 문학석사 및 선학과 박사과정 수료 

○ 수필집 『눈치 없는 여자』

○ 일본 소설 번역『나는 군국주의 일본을 저주한다』, 일본 에세이 번역  『두부집의 사계』, 교재 공역『자기 이해를 위한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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