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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수필] 나무의 견인(堅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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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수필] 나무의 견인(堅忍)

이 일 배

글밭 산책------------- [수필]  나무의 견인(堅忍)

                                                            

이 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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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일이든 남 일이든, 내 집 사는 모습이든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든, 큰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보고 듣고 겪다 보면 참아내기가 어려운 일들이 한둘 아니다. 어쩌면 일을 그렇게 하고 있는가. 사는 걸 이리 힘들게 하는가. 세상을 어찌 이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가. 돌아보고 바라볼수록 견뎌내기가 힘든 일들이 적지 않다. 물신선이라도 되어야 할까. 따뜻하고 시원하게 대할 수 있는 일보다 참고 견디기가 어려운 일들이 더 끓고 있는 세상인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본다. 작은키나무 큰키나무, 곧은 나무 외틀어진 나무, 바늘잎나무 넓은잎나무, 늘푸른나무 갈잎나무……. 생긴 모양도 사는 모습도 다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한데 어울려 산다. 골짜기며 비탈에 살기도 하고, 등성이며 마루에 살기도 한다. 그 모양 모습이며 사는 자리를 두고 자만하거나 한탄하며 살까. 이들은 한결같이 하늘을 향해 잎과 가지를 활짝 펴들고 있다. 모든 게 제 분수요, 제 자리라는 듯 가슴을 훤히 펴고 있다. 마치 무슨 찬가라도 부르고 있는 듯하다. 

  어제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어떤 나무는 가지가 꺾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둥치가 우지끈 부러지기도 했다. 강대나무야 말할 것도 없이 뿌리째 뽑혀 땅 위에 몸을 뉘어버렸다. 그래도 모든 나무는 꿋꿋이 서 있다. 나무들은 언제나 그랬다. 눈비가 내리면 함께 맞고, 바람이 불면 더불어 흔들린다. 눈비며 바람이 세차다 보면 꺾이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무는 변색하지 않는다. 비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내가 고난을 겪는 까닭은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 몸이 없다면 무슨 고난이 있겠는가?(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道德經』 第13章)”라 한 노자(老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몸도 환란도 모두 자연의 일로 여기며 그 환란과도 함께한다는 말이니, 바로 나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나무의 견인(堅忍)을 이른 말일 것도 같다. 노자의 말씀은 다시 이어진다. 

  “내 몸을 귀히 여겨 세상을 위하는 사람은 가히 세상을 맡을 수 있고, 내 몸을 사랑하여 세상을 위하는 사람에게는 가히 세상을 맡길 수 있다.(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내 몸이 중한 줄 알면 세상 모든 것을 중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나무들은 그 거세고 험악한 비바람 눈보라도 함께해야 할 세상의 일이라 여기며, 이리 하늘 향해 온몸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저를 대하는 모든 이들을 포근히 다 싸안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초탈로 이겨내는 인욕바라밀의 수행자인지도 모르겠다. 부처님이 인욕행(忍辱行)을 닦는 산중 선인으로 있을 때, 극악무도한 가리왕에게 누명을 입어 몸이 모두 베이고 찢기었다. 가리왕이 “성나고 분한 마음이 없느냐?”고 묻자 “내[我]가 없거늘 어찌 성내고 원한을 품겠느냐!” 하며 죽어갔다고 한다. 그때 하늘이 노하여 돌비를 내리자 왕은 두려움에 떨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고, 선인의 몸은 본래대로 소생되었다고 한다. 진정한 무아의 가르침을 극적으로 드러낸 이야기일 것이다.

  나무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쳐 가지가 꺾이고 줄기가 부러지고 심지어는 뿌리째 뽑혀 나가는 참변을 당해도 무엇을 탓하거나 허물하지 않는다. 그대로 의연히 서 있을 뿐이다. 설령 넘어져 명줄조차 끊긴다 해도 묵묵히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모든 것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상처 난 가지에도 꽃이 피고 잎이 돋는다. 죽어간 것조차도 언젠가는 새로운 생명이 되어 하늘을 우러르게 된다.

  나무처럼 그렇게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여기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보면 속이 끓고 치가 떨릴 때가 적지 않다. 역사의 희생자를 앞세워 사욕을 채우려 한 사람,‘불환균 불환빈(不患貧 患不均)’이라는 말을 써서 공직 수행의 공정과 정의를 외쳐놓고는 제 일, 제 붙이를 위해 갖은 권세를 쏟아부은 사람, 아버지가 ‘사리사욕 좇지 말고 정의를 추구하라.’고 하셨다면서도 제 곳간 채우기에 수단을 가리지 않은 최고 권력자의 후예……, 이런 이들을 모른 척, 아닌 척 권력으로 덮으며 온갖 획책을 부리고 있는 무리를 보면 참고 견디기가 쉽지 않다. 나라 사람으로 사는 이들의 자존심이 적잖이 상할 일이 아닌가.

  어찌 이런 일들만이랴. 내 소소한 일상사도 다르지 않다. 누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자존심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내 처지를 알아주지 않으려 해도, 가까운 사람과 마음과 뜻이 맞지 않아도 참을 수 없이 속을 끓이며, 심하면 갚음까지도 주고 싶어지는 것은 견인의 인욕바라밀을 몰라서일까. 그 수행이 되지 않아서일까.

주제에 어찌 그런 경지까지 넘볼 수 있으랴. 심사가 어지러울 때는 산을 오른다. 나무를 본다. 저를 짓이기던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서서 말없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나무를 본다. 설령 누가 제 자리를 앗아 무엇을 꾀한다고 베어내고 뽑아내어도, 제 몸을 잘라 연모의 자루로 제집 서까래로 써도, 심지어는 아궁이의 땔감 되어 재로 날아가게 해도 제 갈 길이려니 하며 늠름히 하늘을 우러른다. 이런 나무가 있거늘, 무얼 그리 속을 끓이고 태우랴. 

  누가 말했던가.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의 현인’(이양하,「나무」)이라고. 그 나무를 가슴에 안으며 산을 내린다. 그 견인주의자의 안분지족한 품에 품겨 좁은 속 담금질하며 산을 내린다. 내일 또 오를 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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