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진 속 해덩이 권 영 호(아동문학가·수필가)

기사입력 2021.01.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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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사진 속 해덩이     권 영 호(아동문학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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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안타깝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중대본은 ’2020년 12월 24일 0시부터 2021년 1월 3일 24시까지 전국적으로 특별 방역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긴박한 조치로 희망찬 2021년 해맞이 행사마저 전면 취소되었으니 말이다.

      액자를 꺼냈다. 책장과 벽 사이 좁은 틈새에 숨기듯 끼워 두었던 것이었다. 지난 연초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다. 희뿌옇게 흐려져 있는 유리를 물티슈와 마른 휴지로 번갈아 가며 몇 차례 닦았다. 액자 속 사진이 금방 깨끗하고 선명했다. 조심스레 창문턱에다 올렸다. 새해, 새 아침, 일출을 담은 사진이다. 간밤에 하늘에서 내려온 별빛들이 노닥이는 바다 저편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해덩이었다. 어스름한 하늘 위로 해덩이가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 놓은 황금빛 햇살이 찬란하다.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둥근 밑둥치가 수평선 아래에 잠긴 채, 해덩이는 그만  사진 속에 찰칵 갇혀버렸다. 해덩이는 쉼 없이 하늘로 솟아올라 포물선 하늘길을 따라가며 오늘이 ‘오늘’임을 알려야 한다. 그러다가 서산 저편으로 넘어가 희망으로 그득한 ‘내일’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해덩이만의 영원한 책무다. 

      내일!

      내일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일을 창조하는 해덩이 조차도 모른다.  똑 같은 하나의 내일이지만 맞이하는 사람에 따라 모습과 빛깔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푸르른 창공을 날아갈 듯 벅찬 기쁨으로 다가오는 내일이 있는가 하면 오늘보다 더 아프고 괴로운 시련을 주는 내일, 아니면 오늘과 전혀 다를 게 없어 그저 있으나 마나 할 내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더 애절하게 내일을 기다렸다. 매달 아내에게 얇은 월급봉투를 내밀면서 민망해서 미안했던 마음에 내일을 떠올리곤 했다. 오 남매의 외아들이었던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었다. 당당해 지고 싶었다. 그러나 지쳐서 퇴락한 자신감으로 맞서 보았던 팍팍한 삶 앞에서 좌절하곤 했다. 그래서 더욱 고달팠던 오늘 하루가 어두운 터널처럼 길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며 기다렸던 것이 바로 내일이었다.  

      참 고마웠다. 내일은 나를 휘감고 있던 어두운 우울들을 걷어 주었다. 내 가슴 속 아픔을 작은 행복으로 바꿔주며 달랬다. 그뿐 아니었다. 끝내는 나로 하여금 성취된 환희로 고달픔으로 움츠렸던 어깨를 펼 수 있게해 주었다. 

      어제 말했던 내일이 오늘이 되고 다시 다가오는 내일을 맞이하고 나면 또 다른 오늘이 된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어제, 오늘, 내일, 어제, 오늘, 내일…  세월의 바퀴를 굴리며 참 멀리도 달려왔다. 

      어릴 적부터 반듯하게 자라준 아들은 의젓한 사회인으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제 삶의 전부를 남편이랑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착한 며느리, 매일 보내오는 카톡 속 손녀와 손자의 해맑은 웃음은 가슴 뭉클하도록 사랑스럽다. 명문대학교를 나와 직장에서 마음껏 제 꿈을 펼치고 있는 막내딸은 언제 보아도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이렇듯 나는 내일에게서 너무나 과분하고 값진 행복을 얻었다. 그런 내일에게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내일 역시  내게 줄 다른 것이 더는 없을 것 같다. 나이 든 사람,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누어 주는 상실의 허탈감, 소외된 외로움, 쇠약과 질병, 그리고 죽음 외에는 …. 사진 속 해덩이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비록 작지만 내게는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행복이 있는 오늘이 좋다. 이제는 내일에게 기대지 않아도 된다. 욕심같아서는 미처 수평선을 온전하게 빠져나오지 못한 사진 속 해덩이처럼 이 세상 모두가 오늘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든 탓일까. 내일이 있다는 건 인생에서 높고 넓은 축복이라며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내가 이렇게 간사해졌다. 아니다. 다가오는 내일이 행여 오늘의 내 행복을 빼앗아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에 떨어대는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속 해덩이가 떠 있는 방을 빠져나왔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간사해서는 안 된다, 겁쟁이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다가올 내일이 굴욕과 절망, 그보다 더한 아픔을 준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내일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숙명은 행복하니까 말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지친 일상으로 지내온 2020년과 얼른 안녕을 고하고 싶다.그래서 새해, 새 아침, 하늘 위로 솟아오르다 친구의 카메라에 잡힌 사진 속 해덩이를 바라보며 ‘내일’을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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