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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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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성 정 애

[글밭 산책] ------------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성 정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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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감독은 그 영화에 출연한 여주인공과 바람이 나서 본 부인에게 일방적인 이혼을 요구하였고, 가정을 지키려는 부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새 연인과 딴 살림을 차려 이 땅의 조강지처들로부터 많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아내의 오랜 내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아빠와 딸 수준의 어린 연인과의 사랑을 합리화하는 듯한 영화 제목으로 세간의 분노를 샀다.

  나는 어린 시절,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색채가 강한 시골의 집성촌에서 자랐다. 가정 교육도 그랬지만, 그 당시 학교 교육도 요즘과는 달리 개성보다는 집단의식이 강했다. 늘 흑백논리를 명확하게 해야만 했기에, 이중인격자란 말은 인간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인간 말종의 대명사였다. 그러다 보니 사고에 유연성은 없었지만,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부드럽고 유화적이기보다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요즘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대명사로 깎아내리는 꼰대 스타일이었다. 마음이 변하면 변절자 내지는 이중인격자가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불교의 요체 중의 하나인 무아無我는 정수리를 내리치는 충격이었다. 내(我)가 없다니? 

  설명하자면, 나에게 나라고 고집할 수 있는 항구 불변하는 나(我)는 없다는 말이다. 더 쉽게 설명하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인연因緣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나(我)가 있을 뿐, 변치 않는 나(我)란 존재는 없다. 나(我)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色)가 그러하다. 

  그런데도 이중인격자를 탓할 것인가. 물론 국어사전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자신의 이해 여부에 따라 신념을 달리하는 몰 인격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우리는 늘 변하고 또 변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에 따라 나름의 옳은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의 과보果報를 꼭 받는다. 물론 과보를 받는 시기의 빠르고 늦음이 있기는 하다. 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가. 자신이 한 행동의 대가를 피할 수 없는 숙명. 달리 보면 참으로 공평한 세상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진리.

  무아(無我)는 항심(恒心)에 사로잡혔던 나를 놓아준 위대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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