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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돌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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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돌매화

박 월 수

[글밭 산책] ------- 돌매화

                        

박 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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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그란 양철통은 요람처럼 아늑했다. 어릴 때 그 속에 들어가 노는 걸 좋아했다. 가마니에 벼를 옮겨 담을 때 사용하던 양철통은 농사철에는 꽤 쓰임새가 많았다.   애면글면 기다리다가 말 통의 용도가 끝나기 무섭게 동그랗게 몸을 말아 통 속에 들어가곤 했다. 그 속에 폭 싸여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틈만 나면 들어가 두 팔과 얼굴만 내놓은 채 과자를 먹었고 소꿉을 살았다. 

 

  양철통 속이 점점 비좁아지던 어느 날 몹시 서글퍼졌다. 몸이 자꾸 커져서 통 속에 들어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마도 나는 '피터 팬 증후군' 같은 걸 좀 일찍 앓았는지 모른다. 엉망이 된 성적표를 받아 들고 통 속에 오래도록 웅크리고 있었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버릇은 이어졌던 모양이다. 그런 내 행동에도 어른들은 그다지 마음 쓰지 않았다. 아이들은 별나게 크는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자라기 싫었던 철없을 적 소망 때문이었을까. 내 키는 무던히도 마디게 자라더니 이른 시기에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나는 키 작은 꽃들을 유난히 좋아했지만 작은 것이 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입사 면접에서나 맞선 자리에서 작은 키는 언제나 걸림돌로 작용했다.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보더라도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기는 어려웠다. 키를 가늠하듯 아래위로 훑어보는 남자를 만났을 땐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혼기가 꽉 찬 나이가 되자 ‘작지만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이란 걸 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모퉁이 곳곳에서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는 내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어릴 적 양철통처럼 카메라는 혼자 놀기에 좋은 친구였다. 오래도록 벼르던 카메라를 장만하고 좋아하는 작은 꽃들을 찍으러 다녔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무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다 자란 키가 한 치도 되지 않는 나무는 한라산 정상에서만 볼 수 있다. 바위틈에서 피는 꽃이 매화를 닮아 돌매화(巖梅)라는 이름을 가졌다. 백록담 화구벽에 붙어 자라는 돌매화 나무는 제가 살아남는 법을 안다. 한라산 꼭대기의 거센 바람 속에서 키를 키우려고 우쭐대지 않는다. 몸을 한껏 숙이고 땅으로 기는줄기에 다닥다닥 가지를 모을 줄도 안다. 그 위를 빽빽하게 잎으로 덮는다. 저를 지키기 위해 한 군데서 뭉쳐나는 돌매화 나무는 초여름부터 순백의 꽃을 피운다. 종 모양처럼 생긴 다섯 장 꽃잎을 다 모아도 어른 엄지손톱 크기만 하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한꺼번에 붉은 꽃대를 밀어 올리며 하얗게 웃는다. 

 

  단 한번 짧게 경험했을 뿐이지만 한라산의 추위와 바람을 나는 안다. 초가을 무렵 한라산 영실코스로 산행을 한 일이 있다. 해발 천육백 고지 가재 바위쯤에서 산 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운무를 만났다. 처음 보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빠져 셔터를 누르는 건 잠시였다. 볼이 차갑고 손이 시리더니 온 몸이 얼어붙는 듯 굳어왔다. 구상나무 숲 지대에 숨어 겨우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윗세오름 초입에는 눈보라로 하여 대피소를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해 동사한 사람들의 비(碑)가 있다. 한라산은 그런 곳이다. 산 아래엔 꽃이 피었는데도 정상 부근엔 상고대가 가득 맺혀있어 사계절이 공존하는 곳. 그곳 최고봉에서 키 작은 나무는 살아남아 우아하게 꽃 피운다.

 

  사람 손마디 하나만 한 나무에서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에 끌리고부터 나는 작은 키에 대한 울분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성형천국이 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속으로 움츠러드는 나를 더러 본다. 그럴 땐 극한의 기후를 견뎌내고 험준한 바위틈에서도 꽃피우고 열매 맺는 돌매화 나무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추스르곤 한다.  

 

  모든 생명은 필요해서 그 자리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돌매화가 그러하듯 어떤 상황에서든 성의를 다해 익숙해지려 애쓰다 보면 그 모습이 곧 눈에 띄는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되리란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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