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깍이 화가, 화단에 새바람을 일으키다

기사입력 2023.10.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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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속, 화실과 건강체험관을 함께,,,

    "일근천하무난사" 좌우명으로,,,

    늦깍이 화가, 화단에 새바람을 일으키다 


    일상 속, 화실과 건강체험관을 함께,,,

    "일근천하무난사" 좌우명으로,,,

     

    늦깍이 화가, 화단에 새바람을 일으키다 임대근화백.jpg


      늦깍이 화가로 화단에 입문해 각종 전시와 대회에서 활발한 활약을 하면서 많은 수상과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현대 문인화 작가 소정(素丁) 임대근 화백이 주목받고 있다.

     

      대구 인교동에서 태어난 임화백은 생후 7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하지만 계모마저 임화백이 16세 되던 해 집을 나가버리고 가세도 기울어 힘든 사춘기를 보내던 중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세상을 바로 살아가겠다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중국무술 체육관에 찾아가 관장님의 도움으로 체육관에 기거하면서 청소와 심부름을 하며 열심히 무술을 익혔다. 

     

      이 때 스승이신 관장님은 대만분(화교)이셨는데 당시 영화 ‘정무문’에 출연한 이소룡에게 무술 지도를 하셨을만큼 아시아 내 최고 무술 고수셨다. 그런 스승님께 중국무술, 기공활법, 기공명상 등을 배워 50년이 지난 지금도 수련을 하며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30세에 우리나라 최고 경혈지압의 대가 고광석 박사를 만나 척추교정과 경혈지압을 전수받았다.

     

      이후 고 박사와 함께 일본으로 거너가 세계대체학의 최고 요람인 “나미코시 지압 전문대학”을 수료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 화백은 아내가 운영하던 건강 체험과은 물론이고 제주도 바닷가에서부터 강원도 산골 구석구석에 있는 전국의 경로당과 건강관리실을 돌면서 수십년간 무료봉사활동을 했다. 

     

      이로 인해 국회의원과 각계각층의 표창을 받고 2020년의 삼일절에는 국가원로위원회로부터 “민족공훈대상”을 수여받기까지 했다, 

     

      임 화백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59세 때 명상수련에 서예가 정신집중과 정서함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드 당시 최고 대가이신 율산 이홍재 서예가 선생님을 만나 서예를 공부하던 중 자연스럽게 문인화를 그리게 된 것. 

     

      임 화백은 어린시절에도 여러 사생 대회에서 표창을 받은 만큼 그의 재능은 타고 났음이 분명하다.

     

      그림을 그리기 3개월 만에 대구시전 입상을 시작으로 매일서예대전 입상, 낙동서예대전 삼체상 수상, 영남매일서예대전 입상 등 3년 만에 영남서예대전 초대작가가 됐다. 

     

      이후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의 초대전을 시작으로 바쁘게 개인전과 초대전을 하던 중에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에 임화백은 그림을 중단하고 아내 간호와 아내의 건강체험실을 맡아 운영하게 됐다. 

     

      2년 후 아내의 병세가 호전될 무렵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소개로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최고 실력자, 화정 김무호 선생님을 만났다. 

     

      그렇게 임 화백은 매주 서울을 오가며 3년동안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고 화정선생의 적극적인 가르침 덕에 1년 만에 2022년 대한민국 국전 특선, 목우회 공모전 특선, 서울신문사 추최의 서울미술대전 최우수상을 받고 2023년에는 대한민국 국전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임화백은 대한민국 국전의 초대작가로 우뚝 섰다.

     

      임 화백은 좌우명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이란 있을 수 없다.)”의 글귀를 매일매일 되새기면서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동양화나 사군자보다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반비구상 스타일을 즐겨 그리고 풍수화와 주술화도 그려서 힘든 가정에 행복전도사로도 자처하고 있다. 

     

      임 화백은 한학자이신 조부로부터 한학을 공부했고 성장하면서도 관상, 기역학, 명리, 동양철학을 공부해 음양오행의 역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임화백은 그림을 그려 줄 때 사주를 풀어 그에 맞는 색깔과 음양오행의 기운을 넣어서 그려준다. 물론 무료다. 

     

      우리나라의 농촌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오스의 노동장관이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전)라오스 대사관의 통상대사였던 이재숙님의 소개로 주술화인 목단화 2점을 구입했고 함께 방문한 전 총리도 한 점 구입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숯가루, 귀신을 귀신을 쫓는 황단, 기가 나오는 경면주사와 게르마늄해초바인드 등으로 작업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재료만을 사용한다는 설명을 들은 라오스 노동장관은 그 자리에서 바로 대형그림 2점을 주문했다.

      임화백의 빠른 발전은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을 결과이다. 

     

      이런 임화백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채원 회장.

     

      이채원 회장은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인 이인성 화백의 아들로 헌창사업인 이인성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이인성기념사업회의 후원자로 알게된 임화백이 열심히 공부하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동받아 임 화백에 도움이 되고자 참고서적을 추천해 주며 여러 전시장과 작품 발표회 등을 함께 다니면서 교류를 하며 좋은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반월당 메트로지하상가 내에 있는 화실과 건강체험관을 운영하면서 오늘도 행복전도사, 건강전도사로 열심히 작품 작업 중이다. 

     

      임 화백은 "대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그림을 그려서 힘들고 여려운 가정에 걸어주고 싶다고 한다. 그림으로 세상을 밝히는 행복전도사가 되는 것이 66세의 늦깍이 화가의 꿈"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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