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 산책 [시] 어떤 날은 / 구 은 주

기사입력 2020.09.0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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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밭 산책 [시] 어떤 날은 /  구 은 주

     

    새파란 창틀이었지 아마

    그 안에 갇힌 어둑한 하루가

    어렴풋이 밝아오고 있었어

    그 집 앞으로 자전거가 지나가고

    뒤에 앉은 아이가 따뜻한 등에 기대고 있었어

    시간은 말이 없었지 

     

    말이 없는 시간이 또 지나가고

    자전거는 달렸어

    아무리 밟아도 펴질 생각이 없는 구부정한 골목을 지나

    도랑을 잡고 흐르는 플라타너스 길을 지나고 

    층층이 한 올 한 올 빛살을 풀고 있는 숲에 다다랐지

    숲은 고요한 채 말이 없었어

    말이 없는 숲은 듣기만 했어

     

    바람이 가지를 흔드는 소리

    햇살이 샘터에 내려앉는 소리

    아이가 숨 쉬는 소리

    돌돌돌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

     

    아침마다 자전거는 그 집 앞에서 굴러가고

    숲은 듣고 있지

    조금씩 몸을 내어주며

    파란 창틀 안 자작자작 타오르는 나무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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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 가 의 말

     

    사진(구은주)333.jpg


     추억이 아득해져 가는 나이가 되었지만 , 지금도 코끝에 묻어나오는 , 아버지의 넓은 등에 기대어 맡던 땀 내음이 아직도 아릿하다 . 그 냄새는 사랑의 다른 언어일지도 모른다 . ‘새파란 창틀이 있는 그 집’은 아이의 안식처 ‘숲’이다 . 아이는 아침마다 그 숲으로 간다 . 말없이 듣기만 하는 숲은 아이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 가슴을 한없이 따뜻하게 해준다 . 아이 ‘나무’는 아버지 ‘숲’에 말없이 안긴다 . 오늘도 아득한 기억에 젖어 있는 새파란 창틀이 우리 마음을 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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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은 주 (시인)


    ○2010 『문학세계』등단 

    ○한국문협, 대구문협, 경북문협, 선주문학회, 금오산수필문학회 회원, 구미낭송가협회장, 시낭송지도사. 

    ○시낭송집 『너는 꽃으로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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